중국어를 전공하거나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는 중국의 문학작품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나 또한 노신(루쉰)의 작품은 고등학교에서 들어봤던 아큐정전(아Q정전) 외에는 아는 것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신의 산문집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책을 서점에서 보게 되었다. 순전히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노신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1994년도에 도서출판 창에서 발간된 것을 1996년도에 읽었었다. 내가 연도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는 내가 읽은 책 표지 앞에 내가 구매한 년도를 적어두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깊은 감명을 준 것도 아니건만 이사를 하고 옮기는 그 긴 기간 동안 희한하게도 버려지지 않고 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것은 2006년도였다. 10년 만에 이 책을 내 책꽂이에서 꺼낸 이유는 바로 내가 살고 있던 곳이 노신의 고향인 중국 저장성 소흥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도에 남편과 같이 중국에 들어왔건만 2년 동안 난 소흥과 노신을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루쉰이 담배를 피우는 벽화가 있고 루쉰 거리가 펼쳐져 있었지만 난 노신과 루쉰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루쉰이란 발음이 우리나라에선 노신이라고 읽히는 걸 알게 되고 중국에서 대문호이자 혁명가라 불리던 사람의 책을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사실 아큐정전인 경우는 고등학교 때 국어시험용으로 그저 단문만 읽어봤을 뿐이다. 그리고 짧은 시험용 단문이나 참고서에 책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읽고 싶은 맘은 생기지 않았다. 암울하던 시대를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던 그의 글은 그것이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10대의 정서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읽어도 맞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신이 중국의 근현대문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문제가 되었을 뿐이지 그 당시의 노신은 정말 문학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고향이라는 소흥에 살고 있으니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다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읽게 된 소감은 역시나였다.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서인지 내 독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순화된 산문집에서도 난 그와 공감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노신이 너무 과격한 행동주의 파여서 그런가?
노신은 1881년 중국 저장성 소흥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 의학을 공부했으나 참혹했던 중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 1918년부터 노신이라는 필명으로 "광인일기"를 발표하며 중국 문학에 들어선 인물이다. 광인일기가 유명했던 것이 사실 미치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걸 폭로하는 장면이 있어서였다. 그 당시의 중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반성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 이후에도 그는 계몽을 큰 물줄기로 수많은 글을 썼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소설로 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비판하고 혁명하고자 하는 지도자나 사상가로 비치나 보다. 노신은 끝내 1936년 상해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1만 명 이상의 민중이 모여 그의 장례를 거행했고 "민족혼"이라는 큰 깃발을 덮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 그만큼 노신의 사상이나 글은 그 당시에 중국에 울림이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그의 글이 불편했다. 아마 중국의 상황이나 그의 선동적인 말이나 글들이 우리나라의 상황에 투영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행동하라고 말하는 그의 글이 행동하지 않고 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판한다고 느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22년 다시 한번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본다. 이미 젊은 세대가 아니니 그의 글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나에게 깨어있으라 하고 행동하라 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건만 겉 포장만 바뀌었지 알맹이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어느새 비판을 받아야 하는 낡은 세대가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노신이 왜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고 했는지가 얼핏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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