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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와 공지영의 소설

by kuchiwuchi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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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젊은 시절 내가 품고 지냈던 글귀 중의 하나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살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뭔가를 이루어 놓지 못함에 마음이 흔들릴 때면 이 글귀를 되뇌곤 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 글귀는 부처님 말씀  [숫타니파타]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서로 사귀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내가 이 글귀를 접하게 된 것은 93년에 발표된 공지영의 장편소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소설에서이다. 그 당시엔 정말 아주 센세이션 하고 어쩌면 파격적이기도 하여서 엄청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이야 그런 내용이 그저 그렇겠지만 30년 전의 이런 여성소설은 정말 충격이 컸었고 작가인 공지영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사실 너무 인기를 끌어서 문제였기도 했다. 그녀의 말이나 행동 등이 문화계에 주는 파장도 컸고 매스컴에도 연일 등장하여 급기야는 작가가 너무 피로함을 호소하며 은둔을 하기까지 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중산층 기혼여성들이 가정에서 겪는 여러 문제와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그 당시에는 페미니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가 공지영도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변혁을 부르짖었던 386세대였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작가의 세대적 체험이 추영된 전형적인 386세대의 여성들이다. 그들은 20대 중반에 결혼한 뒤 자신이 배워온 것과는 다른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제적인 결혼이라는 제도에 당황하고 방황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도 생기게 된다. 혜완, 경혜, 영선 이 세 여성이 결혼 이후 겪는 혼란은 여성의 자아실현이나 능력 발휘 혹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하고 나면 그냥 죽은 듯이 살아야 했던 윗세대와는 달리 그때의 여성들은 고학력에 자아실현이라는 열망이 가득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만만치 않았고 남성과 윗세대의 고리타분한 사고를 깨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연애와 결혼, 임신과 출산, 양육 등과 같은 여성이 일상생활 속에서 받는 성차별의 현실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당시 90년대 여성 독자들에게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았었다.

 

다른 곳에서는 쉬쉬하던 부부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는 성폭행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 또한 이 소설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혼과 싱글라이프를 선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당시에는 조금은 영웅적으로 보이기도 했더랬다. 그때만 해도 여성인권이나 이런 건 정말 우리나라 수준이 한참 밑이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었다. 배우고 능력이 출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여겨지고 사회에 순응해야 했던 수많은 20대 30대의 여성들이 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세 여자는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어차피 남성 중심적인 세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니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경혜는 현실 타협적인 길로 그리고 여자라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해야 한다던 영선은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고 혜완은 여성 억압적인 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외톨이의 삶을 택한다.

변혁기의 중심에서 그 변혁을 위해 안락한 중산층 가정을 뛰쳐나왔던 80년대 학번인 여대생은 결국 결혼후에는 더 높은 가부장제적 차별에 반항하여 안전한 '스위트 홈'을 뛰쳐나와  완벽한 홀로서기를 한다. 그래서 이 글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혹은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들린다. 어쩌다 이리되어 버린 걸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모습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았는데  남성들 입장에서는 여자들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왜 이리도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지... 그들의 증오 안에는 도대체 서로 성이 다름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인지 아님 다른 더 근본적인 미움이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남녀 가리지 않고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수도자처럼 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어떤 깨달음과 고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세속적인 성공이여도 좋을 것이고 자신의 목표여도 될 것이며 정신적인 경지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당신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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