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성균관대학교 입학설명회를 갔다 왔다. 그러다 문득 조선시대 때는 성균관대학이 지금의 서울대와 같은 것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성균관에는 어떤 이들이 들어가서 어떤 공부를 했었는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조선시대 성균관
성균관 입학자격
조선시대 최고 학부인 성균관은 입학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이들은 소과 합격자들이였다. 생원이나 진사에 합격한 이들이거나 사학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품행이 방정한 학생들. 그리고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나 3품 이상 관리의 자제들이었다. 공신이나 관리의 자제들은 일종의 특차 학생들이다 여기에 실제 현업에서 뛰는 하급 관리들에 한해서만 입학이 허용되었다.
성균관 수업 형태
성균관에 모인 학생들은 다시 실력에 따라 우반과 열반으로 나뉘어져 따로 수업을 듣게 된다. 말 그대로 수준별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균관에서는 1년에 300일 이상 수업을 들어야 했다. 물론 땡땡이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한 번 수업을 듣는 것을 1점으로 쳐서 총 300점을 얻지 못하면 문과의 초시와 관시(성균관 유생들만 모아서 치르는 과거) , 알성시 (왕이 문묘에 제례를 올리는 것을 기념하여 성균관 유생들을 모아서 치르는 과거) 등 특별 과거에 응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균관 최대의 특전을 얻기 위해서라도 출석 일수 300일은 채워야 했다
성균관 시험제도
출석 일수만 채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였다. 성균관 유생들은 한 달 평균 30번이 넘는 시험을 쳐야 했다. 매일 보는 일일 고사, 10일마다 보는 순말고사, 월말고사, 그리고 학년말 고사 등등 시험으로 시작해 시험으로 끝나는 생활이었다
시험이 끝났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것이 만약 시험 결과가 나쁘게 나와 조통( 성균관의 성적 채점표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을 뜻한다. 최고등급이 대통, 그다음이 통, 그다음은 약통, 꼴찌 등급이 조통이다)을 받게 되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망신을 다 당해야 했다.
알아보고 나니 성균관 유생이 되고픈 맘이 사라진다. 될 수도 없었겠지만 요즘의 자사고나 특목고보다 더 빡센듯하다.
대한민국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교육에 목숨을 거는 나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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